293이거산 X 현실적 사랑주의자

'현실적 사랑주의자'라는 이름으로 음악 만드는 이거산 입니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사진

팀 뉴 제너레이션 오브 스카 페스티벌-2

습작청년 이거산 2014. 9. 11. 22:24

 

 

 

 

 

 

 

 

 

 

 

 아이폰의 공간 부족으로 여행에서 사진을 찍을 저장 공간 확보를 위해서 사진을 다음 클라우드에 업로드 해놓고 지웠는데... 맙소사.. ㅠㅠ 대부분의 사진들이 제대로 업로드가 안되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ㅠㅠ 아쉬운 마음에 흔들린 사진이라도 올려본다. 다른건 몰라도 비치밸리와 넘버원 코리안, 레이지본의 뚜르형아와 스카석스의 사진이랑 후기는 좀 정성 스럽게 쓰고 싶었는데.. 





 아무튼  뭐 글이라도 재미있게 쓰면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이어 쓰자면, 비치밸리는 내가 고등학교때 음악을 들었던 팀이었다. 2002년 당시에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인데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을 좋아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고 레이지본과 비치밸리를 알면서 다른 펑크 밴드들 음악도 많이 듣고 기회가 되면 친구들과 공연도 보러가고 했다. 그때 당시에 같이 공연을 보러간 친구들과 둘도 없는 친구들이 되었는데 중일이와 정호, 그리고 희민이나 여럿 친구들이 지금도 애틋하고 의미가 있지만 아무튼 그때의 영향으로 20살 초반에 한달정도 프로젝트로 밴드를 하며 거리 공연도 하고 마지막으로 스컹크 헬 대관 공연을 했던게 기억이 난다. 아, 그러고 보니 데모 앨범을 만들어서 그날 팔기도 했는데 다시 생각해봐도(지금은 그 음원이 없으니까... 들을 일이 없지만....ㅠㅠ) 살이 떨리고 얼굴이 쪼그라 드는 기분이 든다. 그 데모 앨범을 같이 프로젝트 밴드를 했던 친구의 동생이 블로그에다가 한국에서는 이러한 노래를 앨범으로 내기도 한다며 ㅋㅋㅋㅋ 를 연발아 써놨던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이 떠올리기 싫은 부끄러운 기억을 떠 올리는 이유는 그때 당시 대관 공연을 했을 때 죄송했던 기억이 나서 이다.(그리고 고마운 기억이기도 하지만..) 그때 스카석스의 보컬분이 대관 공연에 우리만 나오는 것이 부담 스러웠던 지라 흔쾌히 다른 밴드들을 라인업 기획해 주고 했는데, 그리고 그 팀들을 보러 온 많은 관객들이 있었는데 대관 공연으로 낸 비용 만큼 그날 공연의 수입금이 있었으나 그날 공연 했던 밴드들에게 공연 페이 등이나 뭐 뒷풀이 비용등을 지불하지 못하고  고맙다는 성의나 인사도 못하고..

  그 다다음날 중일이의 출국과 여러 일들이 있어서 멤버들끼리 할 수 있는 마지막 뒷풀이로 인천에 가서 우리끼리 조촐하게 굉장히 재미없는 뒷풀이를 하면서 꾸벅 꾸벅 졸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 공연 기획이나 비용과 수입금 관리에 나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음으로 그때 당시에도 잘 모르고 있었고 나중에도 모르고 있었는데 문뜩 예전 사진을 보다가 그때의 것들을 이야기 하다가 이러한 사정을 뒤 늦게 알게되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스카 페스티벌 후원이라도 많이 해야지 생각했으나.. 선거 이후 직장도 아직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마이너스 통장잔고로 인한 사정으로 후원을 하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다시 본 이야기로 돌아와 고등학교 때 좋아 했던 비치밸리라는 밴드를 20살이 넘어 우연찮게 서프에러라는 팀으로 활동을 하는 기선이형을 알게 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유튜브도 없고 해서 다음카페에 올려진 영상들이나 음악을 따라 들으면서 스카 음악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는데, 기선이형을 알게 된 이후에 수 많은 스카 음악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20대 초반에 나는 윤기선형아의 추종자가 되었다. 넘버원 코리안 공연을 할때도 거의 따라 다니면서 기선이형!~~ 을 외치며 슬램을 하고 스캥킹을 하고 서프애러의 몇번을 공연을 하고 우울한 뒷풀이에 서울대 입구역의 연습실에서 둘이서 조촐하게 소주를 마시며 사는게 이게 뭐냐?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20대의 초반의 많은 나날들을 보냈던 기억이 크다. 솔직히 나는 많은 펑크 밴드들과 스카밴드들을 부러워하고 흠모했지만 나도 밴드를 하고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그다지 없었다. 기선이형을 만나고 그 후에 노래를 쓰는 법이나 기타를 치는것이나 여러가지를 배우고 하면서 밴드도 같이 하게 되었고.. 언젠가 멋진 스카 음악을 해야지 정도의 꿈을 가지게 된거 같다. 20살 초반에는 뭐 크게 인생에 대한 대비나 다른 것 없이 생활고로 인해서 알바를 하고 그냥 그때 그때 통장잔고를 넘겨내고 아버지에 대한 스트레스나 걱정 뿐이 전부였고.. 그 외에는 공연을 보러가거나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일이 가장 행복한 일이었기 때문에 비치밸리에 대한 기억이나 서프애러, 그리고 넘버원 코리안과 기선이형, 그리고 승용이형, 현석이형이나, 뚜르형, 우유형이나 밤톨이형..  그 팀들을 했던 멤버 형아들.. 내가 존경하고 닮고 싶었던 형들에 대한 기억이 가장 컸던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형들의 음악을 들으면 왠지 소주가 먹고 싶어진다.









 그런 각별한 팀들이기 때문에 (그것도 오랜만에) 한자리에서 마이클박형아의 목소리와 함께 수많은 스카밴드들을 볼 수 있다니.. 예전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눈물이 약간 또르르 흐르는 기분을 느꼈는데, 막상 당일이 되자 공연을 보러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노란색의 마이클박 형아 티셔츠를 입고 공연을 보러 가고 싶었지만.. 사실 그날은 아버지의 기일이기도 했고 그날따라 아버지와 안좋았던 일들이 자꾸 떠올라서 기분이 처참했기 때문에 공연을 가서 기분 좋게 슬램을 하고 즐기기 어려울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자리에서 음악을 듣고 있자니 속으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내가 우울하던 말던 신경 쓰는 이들도 없을테고 우울한 표정으로 팔짱키고 공연을 보는게 공연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힘 빠지는 일일테니 예의상 즐겁게 공연을 보아야한다와 죄스러운 마음이 복잡하게 얽혀있다가 기선이형 팬클럽으로 동원된 배티에즈의 홍범이 형이 브루스리 밴드에서는 즐겨야지? 라는 말에 뭔가 앞으로 나와서 공연을 보다가 뒤에서 자꾸 밀치는 백인들에 자극받아 다른 생각을 다 잊고 슬램도 하고 때창도 같이 했다. 


 다 기억이 남지만 오랜만에 보는 그 익숙한 비치밸리 형아들의 얼굴이 너무 기억이 난다. "오늘 공연중 우리가 제일 못하는 팀일거라고" 이야기 했지만 비치밸리는 나에게 영웅인데.. 공연이 끝나고 조심스럽게 별로 친하지 않았던 비치밸리 멤버 형아에게 고등학교 이후 오랜만에 공연을 봤는데 너무 감동이었노라고, 눈물이 살짝 났다고 말을 건네고 왔다. 편의점 사장인 창민이형이 시간날때 편의점이나 놀러오라며 말을 건넸는데 고딩때 봤던 창민이형의 트럼본을 불던 그 때와 지금의 나팔 없이 노래하는 창민이형의 모습이 지금 블로그에 후기를 써내려가면서 교차되어 떠오른다.


 

 



 넘버원 코리안을 알게 된것이 기선이형이 넘버원 코리안에서 베이스를 치게 된 이후에 공연을 자주 보러가면서 알게 되었는데 공연을 보러가면 항상 형들이 챙겨주고 해서 넘버원 코리안 형들을 엄청 사랑하게 되었다. 한 일년정도는 거의 넘코형아들의 공연을 매일 보았던 적이 있었는데 가서 항상 기선이형 짱! 넘코 짱! 해서 소년팬 역활(이라고 하면서 무대 난입 변태)를 수행했던거 같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그떄와 많은 시간이 지나고 넘버원 코리안의 밴드 멤버들이 많이도 바뀌었다. 우유형의 보컬이나 방주원형아의 존재 때문에 예전과 같이 즐겁고 유쾌하고 신나는 넘버원 코리안 이지만 처음보는 멤버들이 많아서 새로운 팀 같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비치밸리와 넘버원 코리안, 그리고 공연의 마지막에 스카석스를 보면서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실수였는지.. 다음 클라우드의 오류였는지 사진이 날아가버려서 아쉽기는 하지만.. 아무튼 20대 초반에 보았던 밴드가 계속 멋진 공연을 하고 관객 모두가 때창을 하고 하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생각해보면 항상 제너레이션 오브 스카라는 공연을 하면 후기가 항상 좋은 이야기가 가득했다. 수입금도  밴드들의 뒷풀이 비용등에 다 쓰고 공연 후에 밴드들의 관계가 많이 돈독해져있었다거나 뭐 그런 이야기를 많이 주워들었던거 같다. 그러고보니 그때 당시의 공연들도 잘 못보러 갔었는데..

  넘버원 코리안 공연 본 기억밖에 안나는거 보니 지금도 잘 못 보러다니지만.. 그때도.. ㅠ(그때는 넘코형들이 그냥 공연을 공짜로 보여주고 해서 없는 사정에 공연은 보러가고 싶고 해서 더 많이 따라다녔던 기억이 난다)아무튼 공연을 하려고 대기중인 브루스리 밴드에게 스카석스 보컬분이 오퍼레이션 아이비 멘트를 날릴때는 아래에서 대기중인 브루스리 밴드 멤버들도, 그리고 관객들도 다 웃었던거 같다. 그리고 그 모습이 참 멋지고 부러웠다. 나도 영어 잘하고 싶다. 


 

 

 

  그렇게 멋진 스카석스의 공연이 끝나고 브루스리 밴드의 공연이 시작 되었는데 마이클박의 표정이 별로 좋지가 않았다. 그냥 무표정히 누군가 마이클박을 불렀지만 시크하게 다 무시하고 악기를 세팅하고 공연을 시작했다. 시작하면서 섹소폰에 마이킹한 마이크는 나오지만 보컬용 마이크로 옆에 둔 마이크가 나오지를 않았는데 결국에 마이클박 형아가 섹소폰의 마이크를 꺼내 들어 노래도 부르고 그거로 섹소폰 마이킹도 하고 했다. 

 다 마음에 들었지만... 이 공연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엔지니어에 대한 것이었다. 브루스리 밴드 떄도 그렇고 비치밸리때도 그렇고 리허설을 못봐서 모르겠지만.. 밸런스등을 하나도 신경을 안쓰는지 어떤 악기는 아예 들리지를 않고 어떤 악기는 찢어지도록 벙벙거리거나 지직거리거나 했다. 

 거기에다가 베이스 앰프였는지 어디에서는 문제가 생겼는지 퍼벅 하는 소리가 들리고 전기 잡음으로 추정되는 노이즈가 계속 잡혀서 나왔고 스카밴드들구성상 마이크 갯수가 늘어나거나 핀마이크가 아닌 유선 마이크로 마이킹을 하는 것에 대해서 대처를 못하는듯 했다. 한참 동안이나 마이크가 안나오는데 모르고 있다는것 또한 참 답답한 일이고 자신의 악기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때 그 밴드의 멤버는 아마 섭섭했을것이다.


 물론 낮 2시부터 밤 10시까지 한 엔지니어가 모니터링을 한다면 굉장히 괴롭고 힘든일이겠지만, 그렇게 장시간 한 엔지니어가 모니터를 하고 있다는것도 좀 안타까운 일이고 노이즈에 대한 대책없이 공연 끝까지 간다는것 자체가 아쉬웠던 점이다. 공연의 전반적인 기획이나 진행은 다 감동적이었으나

음향으로는 조금 불안정했던것 같다.  흔히 엔지니어를 하는 아저씨들이 어떤 팀은 공연을 잘하고 못하고를 이야기하지만 막상 보면 어느 무대에서 공연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팀의 좋고 나쁨이 다를때가 있다. 물론 어디에서나 좋은 밴드들도 있지만, 펑크 장르적인 특성상 굉장히 찢어지는 시끄러운 사운드를 연주하는 팀이거나 노래마다 장르가 다양한 팀들은 라이브를 했을때 굉장히 별로 일때가 많은것 같아서 그런 경우 실시간으로 엔지니어가 그것에 대해 신경을 써줘야 하는데 요구하는 기본 값만 맞춰주고 끝이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모니터를 벗어나서 무대 아래로 들리는 소리는 전반적으로 밴드가 아닌 엔지니어의 역량으로 들어나는 일임에 불구하고..


 


 아무튼 그렇게 아쉽지만 브루스리 밴드의 공연이 시작되고 마지막 밴드 답게 모두가 슬램을 하고 스캥킹을 한거 같다. 불효자식답게 아버지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스캥킹을 하고 아는 부분의 가사를 때창했다. 끝나고 땀이 나서 초췌한 꼬라지가 왠지 창피해지기도 하고 다시 우울한 기분이 돌아와서 혼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버리긴 했지만 돌아오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연도 잘 보러오지 않게 되었고 예전의 영웅들도 거의 까맣게 잊고 지냈고, 기선이형의 추종자에서 안티(진짜 안티는 아니고 많이 형에게 개기는 정도지만..)로 변했지만 음악을 들으니 또 예전의 감정들이 울컥하고 떠오른다. 잊었던 감정들이나 기분들이 슬그머니 떠올라서 다시금 예전의 시간들에 감상이 젖어서 몇가지 개인적인 일들이 없었다면 정말 나는 너무 행복한 하루가 됬을거라고..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 다시 스카 페스티발이 열린다면 좋겠다. 그때는 꼭 후원도 해야지. (후원을 못하면 맨 마지막 밴드의 공연이 끝날때 멀리서 폭죽이라도 쏴야겠다)마이클박형아가 중간에 핸드폰을 가지고 나와서 노래의 전주를 핸드폰 스피커로 마이크에 틀어놓고 노래를 시작했을때 맨 앞이어서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것이 보였다.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과 추측을 해보았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어를 못하는 그. 공연중 멘트에서 계속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연달아 했다. 그에게는 미국에서 어떤 공연보다 한국에서 자신이 인정받고 자신의 밴드가 공연에 서길 기다리진 않았을까? 예전 마이클박이라는 이름으로 하이서울 페스티벌에 왔을때 조촐한 형아의 무대에 실망한 멍청이들이 작은 소리로 야유를 보내는걸 듣고 칭키스나 브루스리밴드가 오면 저딴 야유 못할텐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아무도 형아에게 야유를 보내지 못했으리라. 모두가 존경하고 감탄했겠지.


 

 아무튼 후기는 여기에서 줄여야겠다. 카페에 앉아서 옆에서 시끄러운 수다를 들으며 여자친구의 구박속에서 쓰다보니 주어도 없고 두서도 없다.

재미 있게 쓰려고 했지만 실패! 결론과 요점은 최고의 공연이었고 여러 옛 추억들이 떠올랐습니다. 내년에도 앞으로도 쭉 이런 공연이 매해 있었으면 좋겠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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