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이거산 X 현실적 사랑주의자

'현실적 사랑주의자'라는 이름으로 음악 만드는 이거산 입니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내가 이상규 전 의원님을 지지하는 이유.

습작청년 이거산 2015. 4. 22. 03:14

                                                                               






 내가 이상규 전 의원님을 지지하는 이유. 



 토요일이면 민원의 날이라고 하여 관악 주민들을 상대로 이상규 전 의원님 지역 사무실에서 민원을 받았었다. 

당원 가입을 한 뒤  얼마 되지 않아서 개인적인 일로 민원을 드리러 간다는게 좀 눈치도 보이고 부끄러웠지만 당원이라면 함께 고민을 나누고 힘든일이 있다면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며 사무실에 가서 이야기 하자고 민원의 날에  고민을 하다가 사무실에 가서 전후 사정을 말씀드리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의원님을 처음 본게 그날 사무실이었던 것 같다. 


 망원역 근처 지하 작업실에서 2평되는 공간에서 1년정도 먹고 자고 생활하다가 내가 너무 존경하는 밴드의 보컬형의 도움으로 신림으로 이사오게 되었다. 신림으로 이사를 오게 된 이유는, imf 이후 오랫동안 알콜중독이셨던 아버지가 사고로 떠나셨을 때 일을 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안받고 신경도 못 쓰고 있는 사이 뒤늦게 눈을 감은 아버지를 떠나보내고는 죄책감에 시달려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같이 밴드하던 형들이 많이 사는 관악구로 이사오게 되었다. 그 전에는 정당 활동을 해 본 적이 없고 누구의 말 처럼 중앙에서 지역으로 활동하기 위해 내려 온 것도 아니었다. 이사를 오고 그 해 여름에 혼자 찾아간 집회에서 서명을 받고 있던 진보당 부스를 우연히 발견하여 가입서를 쓰러갔다가 보좌관님을 만나고 관악구위원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합정역에 같이 밴드를 하고 있던 형과 살고 있을때 키우던 고양이의 영향으로, 망원으로 혼자 넘어와 생활할때 지하 작업실에서는 고양이를 키울 수 없어 작업실 앞에서 길고양이들의 밥을 주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지하 생활을 벗어나면 꼭 고양이를 키우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신림에 와 치즈라는 첫째를 가족으로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 불행이 시작되었다. 어머니가 허락없이, 실수로 금액을 미 기재한 차용증 때문에 빌리지도 않은 빚이 2400만원이 생긴것이다. 고졸에 밴드를 하면서 생계는 알바로 유지하는 청년에게는 2천만원이라는 돈이 큰 부담이었다. 민사로 진행되던 재판을 당시에 집이 경매로 넘어가 등본상 주거지 불명으로 등기우편을 받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몇번의 재판에 불출석 상태로 진행이 되자 판결은 상대방의 주장이 모두 진실이 되어 2400만원 원금에 년 20퍼센트 이자를 갚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상대방에게 빌린적이 없는 돈을 갚아야 한다는것이, 황당하고 어머니가 원망스러웠지만 판결이 난 재판에 항소할 자신이 없어 돈을 갚을 생각을 했었다. 물론 의원실에 민원을 받은 이후 여러 조언을 받은 뒤 민사의 판결을 취소 받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 소송 총 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종결로 끝났지만. 


 개인적인 도움을 받아 이상규 전 의원님을 지지하는것만은 아니다. 몇달을 구에서 인가 어디에서 진행한 공사에 점심을 제공한 식당이 밥값을 못받자 중간 다리역활을 하여 해결한것과 당선되서 도림천에 범람을 막기 위해서 당선 직후 박원순 서울시장님과 만나 논의하고 임시 저류조 설치하고 난 이후로 신사동쪽의 반지하나 지하에 사는 사람들의 비 피해를 막은것, 노후하고 열약한 노인정 시설에 초선 의원이 10억 예산을 가져와 관악구 경로당을 수리하여 어르신들을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기여한것, 그외에도 남들에게는 이야기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민원의 날에 찾아와 도움을 받으시거나 떄론 해결은 되지 않았지만 손 잡아주시고 고마워 하시던 모습들이 마음속에 큰 감동이 되어 의원님의 모습이 남아있다.


당해산과 내란음모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막기위해 한달 가까이를 단식을 하시고도 세월호 농성장에서 또 다시 단식을 하던 국회의원, 여당 뿐만 아니라 야당까지 욕을 먹고 있는 상황에서 정신 못 차리고 사진 찍으러 온 정치인들이 팽목항에서 혼쭐나고 쫓겨날때 츄리닝 차림으로 동네 아저씨처럼 팽목항에서 할일을 찾아 자원봉사를 하시며 함께하던  국회의원. 국정원 댓글, 국정원 소유의 세월호 증거등을 찾아서 의혹들을 증명하고 세월호 관련되어 마이크가 꺼진 이후로도 분노의 말씀하시던 모습, 단식으로 나빠진 건강으로 인해서 한 여름에도 추워서 담요를 덮고 있던 모습, 사무실 앞 1500원 짜리 국수를 먹으며 밝게 웃으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굳이 후보직을 사퇴하고 난 뒤에 지지의 글을 쓰는 이유는 이상규 전 의원님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생각하기때문이다. 

공보물에 써 있는 대로 인물로는 이상규 의원님만큼 멋진 정치인을 관악에서 본 적이 없다. 남들이 무모한 도전이라고 이야기하고 때로는 실패 하더라도 그 처절한 무한도전을 이어갈수 있는 강한 분이라는 것을 지지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선거기간 동안 도움이 될 수 있던게 아무것도 없어서 너무 죄송하고 부끄러웠으나 앞으로 힘이 되어 드릴 수 있도록 더 많이 배우고 노력할 것 이다. 관악 을 서민의 행복을 위해 싸우던 국회의원의 정당해산과 부당해고는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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