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이거산 X 현실적 사랑주의자

'현실적 사랑주의자'라는 이름으로 음악 만드는 이거산 입니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박민규형아의 카스테라

습작청년 이거산 2017. 3. 2. 17:49




-위 사진은 박민규 작가형아 더블 북콘서트 공연날에 카스테라 멤버들이 찍은 사진-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나는 알콜중독의 아버지와 금융다단계의 어머니로 인해서 10대부터 가정불화와 가난으로 

우울해했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할 수도 없게 바로 생계를 위해서 아르바이트에 진전하고 알콜중독과 당뇨등 건강악화된 

아버지와 생활하면서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음악과 소설이 때로는 많은 힘을 주었다. 


다들 대학을 갈때, 생활비도 없는 상황에서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할거냐는 강요되는 질문들에 밴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음악을 전공한것도 아니며, 악기 하나 제대로 다루는것은 없지만 그냥 펑크음악이라면, 스카펑크밴드라면 오랫동안 

즐겁고 행복한 추억과 낭만으로 남을것 같았다. 대학을 안 나와도 될것 같고, 연주를 잘하지 않아도 괜찮을것 같아서. 


동생이 군대에서 십자인대가 파열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을때 군병원에서는 큰 수술은 하는게 아니라고해서 수술비를 마련한다고 

조금 모아놨던 돈을 다이어리에 끼워두고 부족한 돈을 어디서 빌릴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중 반이 사라졌다. 

몇일 뒤 들어온 아버지와 또 한차례 싸움을 하고, 또 그 몇일뒤 부대에서 걸려온 동생에게 미안해서 아무말 못하자 

동생이 밖에서 수술받으면 눈치가 너무 보일것 같아.. 아무래도 여기서 수술을 받아야겠다며 그래도 축구하다가 십자인대 파열로

곧 전역자라고 동기들이 부러워한다는 농담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후 들어갈때 까지만해도 십자인대파열, 수술 끝나고는 그냥 염증을 제거였을뿐이라는 황당한 수술결과를 받고는

만기전역으로 나왔지만-


동생이 휴가를 나오면 따로 동생을 챙겨줄 가족이 없으니까 나라도 용돈을 챙겨줘야지 해서 하고 있던 알바외에도 새벽에 단기로 알바를 하거나 

주말에 인력사무소에 나가거나해서 용돈을 조금 쥐어주곤 했다. 휴가를 나와서 아버지의 술주정의 흔적들이 가득한 엉망진창의 집에 

들어오면 더 힘들어질까봐 친구들과 시간보내다가 들어가도록 배려도 하고  아버지가 젊어서 번 돈으로 장만한 명신아파트에서 강제집행으로

노숙자 신세가 되었을때도 동생에게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힘든만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자신이 죄책감을 느낄까봐서.


 스무살이 넘고 많은 술을 마시고 또 많은 현실좆도 겪어봤지만 지금도, 이십대 중반에도 나는 어른이 아니었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의 푸시맨의 심정으로 화성에 도착하지 못한 지구인들과 모스 부호라도 나누는 심정으로 당시에 박민규 작가형아의 

팬클럽에 타자를 두드렸다. 그 모스 부호가 우연찮게 다른 지구인들에게도 발견되고 또 우연찮게 다른 모스부호가 돌아오며 지구영웅 박민규 카페에서 

다양하고 이상한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연찮게 소설 카스테라의 이름을 딴 카스테라 밴드를 시작하게 되고 소설의 내용을 오마주해서 

만든 노래들과 삼미야구의 정신을 본딴 아마추어리즘으로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마추어리즘으로 농담같은 연주를 하는것으로 만족을 했는데(보는 이들은 고역이었겠지만) 내 동생이 함께 밴드 멤버로 합류하게 되자 

좀 더 성의있고 아마추어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고민이 생겼다. 그런 고민들사이에 또 그런 모스부호를 발견한 박민규작가형아가 북콘서트에 우리를 

불러주셔서 정말 기쁘고 행복했지만 한편으로 실제로 기타를 치고 밴드를 하기도 하는 박민규 작가형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그리고 동생까지 끌어들였으니 멋진걸 해보고 싶은) 특별한 음악을 하고 싶어졌다. 



냉장고에 이것저것 넣다가 나중에는 온 세계를 몽땅 넣은것 처럼 촉촉하고 부드러운 한덩어리의 카스테라를 발견했으면 했었다.

하지만 냉장고 문을 열기 전에 꿈에서 깨어 시끄러운 소음의 냉장고 앞에 누워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풋워크 앨범을 만들고 이후

카스테라 활동을 그만둔 후에 쟈민펀스타를 같이했던 형에게 시퀀서와 악기를 배우며 이십대 후반을 보냈다. 이후에는 나를 빼고 나머지 멤버들이 활동을 

이어갔지만 지금은 카스테라 밴드는 활동하지 않는 상태이다. 이제와서 이야기하는거지만 진짜 듣도 보지도 못한

음악을 해봐야겠다며 만들었던 오리지날 트랙들이 있었는데 너무 난잡하고 아무도 이해 못할것 같아서 목표한 날짜가 다가와서 몇주만에

부랴부랴 대충 만든것이 풋워크 앨범의 음원들이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몇일전에 문뜩 중고서점에 가서 좁은 방에 머무를수 없던 작가형아의 책들을 다시 사서는 독서를 했다. 예전에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제일 좋았었는데 

시간이 지나 읽다보니 지금은 파반느와 카스테라가 제일 마음에 남는다. 






카스테라를 다시 읽으면서 각 단편의 이야기들은 또  '나'라고 불리우는 또다른 자아이고 또 나는 무수히 많이 쓰여지고 있는 단편이자 장편중에

한편이  아닐까-  이야기가 결말을 맺는 순간에 나또한 그 한덩어리의 카스테라가 일부 되어있겠구나-하고 깨달음을 느꼈다. 

소설속의 무수한 나를 흉내내지 않고 지금의 나의 이야기에 온전하게 빠져들어야겠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조연일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박민규 작가형아의 소설속에서는 주연으로 등장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아키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영화처럼.

 가난하고 소박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주연들로 나오고, 그런 사람들의 따듯한 마음이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들이 내가 목격하고 마주한

박민규 작가형이며, 소설속의 나라고 느꼈다. 세계를 기록하고 남기는것. 그리고 또 그 기록들을 읽고 위로를 받는것. 

어른이 평생 못될 우리들을 위해 앞으로도 그 위로들이 이어지기를 기도한다.















언젠가는 동생과 같이 현실적사랑주의자라는 새로운 밴드를 하면서 

지구영웅 박민규라는 노래를 만들어봐도 좋겠다.